사랑이 세상을 바꾸지 못할지는 몰라도...

우꼴청년 몇명을 사람 만들어놓을 수는 있을 것 같다. 페미니스트 혐오주의자들 절반은 아마 여자친구가 없어서 저러는걸거야 분명히... 아놔 진짜 쟤들 연애좀 했으면 좋겠다(그 대상이 될 여성분에게는 삼가 조의를 표함) 연애를 해야 사람되지 저거 저래서 결혼이나 하겠어? 결혼도 못하면 이제 키워로 백년 사는거야 ㅠ퓨ㅠ

by kkkclan | 2009/11/02 04:58 | 트랙백 | 덧글(0)

민중의례에 대하여.

민중의례는 분명히 없어져야 할 관습이다. 권위적인 것이기도 하고,

그러나 지금 문제의 핵심은 그것이 아니다. 과연 국가는 공무원 노조의 행사에서 민중의례를 하지 말라고 강요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다양한 논제를 함유하고 있다. 공무원은 노동자인가 아닌가, '공무원은 공권력을 독점하는 특수 서비스직'이라는 말은 고위공무원에 국한되어있는 이야기이고 실제로 공무원의 노동은 대개 일반 사무직과 다르지 않은, 단순 정신노동에 불과하다.

또한, 공무원이라고 통칭되는 사람은 상당히 넓은 계층을 포용하고 있다. 9급으로 입사한 사람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5급 이상으로 승진하기 어렵고, 이들 모두를 특권계층-또는 철밥통-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공무원 불패 신화도 공공기관 개혁시도 이후 정기적 해고가 구조 내로 편입되면서 옛말이 되었고, 월급 수준도 상당히 열악하여 많은 공무원은 몇시간씩 남아서 잔업근무를 해야 4인가족 기준의 평균 생활비에 약간 못 미치는 돈을 겨우 충당한다.

반면 고위직(5급 이상) 공무원들은 관리자로써 호화로운 접대를 받기도 하고, 월급도 넉넉하며, 재경부나 행안부등 권력 핵심 부서의 경우 퇴직 후 각급 회사의 이사로 재취업하기도 한다. 과연 이들이 공무원이라는 한마디의 말로 뭉뚱그려질 수 있는 동일한 사람들일까?

이처럼 이들의 노동조건과 삶이 일반 사무직 노동자에 비해 탁월하게 대단하지도 않은데 언론은 이들을 특권층, 또는 노동귀족이라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공무원이라는, 공공기관에서 국가권력을 집행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특수하게 부각시키며 봉급은 쥐꼬리만큼 주는 주제에 공무원의 신성한 직분을 성실히 수행하고 노조따위는 집어치우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공무원에게 노동3권을 보장하는 것은 옳을까?

노동 3권은

90년대에 대학다녀도 민중의례 모를 수 있고, 80년대에 학교 다녀도 집회 한번 안나가봤을 수 있다. 모르는 건 죄도 아니고 부끄러워할 일도 아니다. 그냥 몰랐으니까. 모르는 걸 어쩌겠어. 화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아쉬울 뿐이다. 그런데 잘 알지도 못하는 것에 대해 그것이 잘못인양 걸고넘어지면서 욕하는 건, 그리고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고 함부로 말하는 건 죄다. 부끄러운 일이고.

by kkkclan | 2009/10/24 03:40 | 트랙백(1) | 덧글(8)

신분증명의 문제

병역에 관련된 글을 읽다보면, 나 육군 예비역 병장임 하고 인증뜨는 구절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내가 제대하고나서 병역에 대해 글을 쓰려면 나 공익 예비역 이병임이라고 신분을 증명해야 하는건가 싶은데 아 이건 뭔가 뽀다구가 안나잖아 안그래?

한국에서 병역의 의무는 모든 남성이 짊어지는 것이지만, 꼭 그것이 모두에게 해당되는 건 아니다. 종종 드문 경우로 5급 판정을 받은 분들도 있고, 약 10~15%정도의 남성은 공익요원으로 군복무를 치르게되고, 현역으로 가신 분들중에서도 훈련소에서 십자인대 끊어먹고 의가사제대하는 분도 있다.

그런데 병역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보면, 대개는 군복무를 정상적으로 마친 사람들이고, 이를 글에 표현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뿐만아니라 덧글등을 통해 여론을 파악해보아도 현역으로 군대를 마친 사람이 아니면 군 복무에 대해서는 이야기해선 안된다는 분위기가 존재한다.

하지만 국방의 의무는 엄연히 한국사회 전체의 문제이고, 따라서 오직! 군복무를 마친 남성들만이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은 옳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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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계속

by kkkclan | 2009/10/18 17:06 | 트랙백 | 덧글(2)

방송탄압과 민주주의

다양한 분야에서 진보적 목소리를 대변해왔던, 또는 그러한 공간을 열어주고자 노력했던 사람들이 최근 방송에서 사라지고 있다. 정권의 의도적인 지우기라고밖에는 보여지지 않는

더블타겟 보고 있는데, 야 스웨거 너 너 자신의 구명을 위해서라면 저 병사들은 다 죽여도 되냐? 헐 헬기도 잡네 ㅋ

by kkkclan | 2009/10/14 01:49 | 트랙백 | 덧글(0)

부족전쟁, 늅늅에서 인간님으로.

처음 부족전쟁을 접한 것은 선임의 소개로부터였다. 폐인게임이란 소리는 익히 들어서 접근하지 않으려 했으나, 선임의 강권 하에 부족의 세계로 빠져들었고 어느덧 한 사람 역할을 하는 위치에 이르게 되었다. 나으 부족전쟁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사건이 일어나려 하는 지금, 그간의 부족전쟁 경험을 정리하는 의미에서 이 글을 쓴다.

처음 부족전쟁을 시작하자 생경한 모습이 보였다. 어느 위치에서 시작할래? 랜덤, 남동, 북동, 북서, 남서의 선택지가 내게 주어졌고, 나는 랜덤을 선택했지만 남동에 떨어지게 되었다. 처음 찍은 건물은... 자원굴. 영웅이 뭔지 동줍이 뭔지 몰랐던 시절, 나는 간 크게도 계정 세개를 돌리면서 자원 생산에 주력했다.

그런 나를 진정한 훼인의 세계로 인도한 것은 겜겔과 포럼의 글들이었다. 오오 동줍이라니 이런 신세계가! 처음 옆마을에 창병을 보내던 순간의 두근거림이란... 여러 자료들을 숙지하며 계정 3개는 딱 맞아죽기 좋은 건수라는 걸 알게되었고, 타 계정은 접고 본계정으로 무한 동줍을 돌리면서 진정한 부족'전쟁'의 막이 열렸던 것이다.

열심히 주변의 밭을 갈며 회광 도끼질하는 농부의 길에 전념하던 내게, 아래의 먹음직스런 마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10*****, 음 새로 시작한 유저인가보군, 뉴비실드만 풀려봐라 갈아주지 ㅋㅋㅋ 이러고 지켜보고 있는데... 뉴비실드가 풀리기 전에 내 점수를 넘어섰다!!! 이건 뭐지? 엄청난 의구심에 주변의 유저들과 접촉하며 그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때 나의 눈에 들어온 것은, 부족! 그래 부족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부족!전쟁이니까!

조용히 잘 크고 있으니 아니나다를까 나에게도 초대장이 한장 왔다. 지금은 적으로 돌아서 열심히 갈아대고있는, 소수정예에서의 초대장이었다. 아직 시작한지 얼마되지않은 늅늅한 나에게 그것은 강자에의 길로 들어서는 천국의 열쇠처럼 보였고, 결국 나는 덜컥 소수정예에 가입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부족 돌아가는 모양새는, 들보가 제대로 들어서지 않은 집과 같았다. 부족원간의 유대도 엉성하고, 무엇보다 부족장이라는 사람의 언행이 상당히 경솔하기 그지없었다. 맞지 않는 톱니바퀴처럼 끼익거림을 느끼면서 나는 불안감과 어색함을 느꼈고, 부족의 일에 점차 관심을 두지 않게 되었다.

당시 10*****은 점수가 멈췄다 늘었다를 반복하며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고, 나 역시도 무료프리미엄의 단맛을 본 후 5000원이라는 거금을 투자하여 한달간 프리미엄을 넣고 퀵바동줍을 통해 15*15를 정리해가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 독종 부족의 족장이신 스키피오님으로부터 메일이 한통 왔다.

그 메일은 소수정예 부족장의 경솔한 행동에 대해 비판하며 이에 전면전을 선포, 소수정예 랭커들에 대한 부족 가입을 허용한다는 내용이었고, 명백히 보이는 부족장의 뻘짓에 나는 더이상 소수정예에 미련을 남기지 않고 독종으로 돌아서게 되었다. 마침 주변에 가끔 메일하던 독종 부족원이 있었기에, 나는 독종에 들어오고 이내 부족에 적응하게 되었다. 여전히 커뮤니케이션은 부차적인 수단에 불과하다고 여기고 있었지만, 조금씩 부족에 적응해나가며 개념을 찾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독종에 들어온 이후 나는 초치기 이벤트와 여러번의 방어지원을 거치며 조금씩 개념을 찾아갔고, 부족에 대한 소속감역시 더 강해졌다. 동시에 인근 부족원들과 더 자주 교류하게 되며 커뮤니케이션이 급박한 상황에서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인지하게 되었다. 그러던 즈음, 첫번째 전투가 벌어졌다.

문제의 발단은 10*****이 학생이라는 것에 있었다. 곧 방학시즌에 접어들 것이고, 방학이 되면 저 숫자놈을 잡기는 커녕 숫자에게 잡아먹힐지도 모른다는 조급증은 나에게 무리한 공격을 감행하게 했다. 물론 결코 무리한 공격은 아니었다. 병력 수준이나 방병 수준에서 나는 숫자를 압도하는 위치에 있었고, 개전과  동시에 감행한 공격은 숫자의 방벽을 깎고 농가를 부수고 본부를 털어버리며 압도적인 위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전혀 경험이 없는 상황에서 숫자가 공병을 플릿했다 주변의 부족원과 나에게 역습을 가하기 시작하자, 늅늅의 나약한 정신줄은 끊어질 단계에 이르렀다. 그리고, 가장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고야 말았다. 도끼 두개가 떴다고 장벽 냅두고 방병을 플릿한 것이다. 아직도 이때만 생각하면 속이 쓰린데... 숫자와 그의 동료 부족원의 공병은 내 방병으로 충분히 바르고도 남을 수준이었고, 이때 마을에서 버티고 있었다면 지원오는 알비 부족의 방병을 계속 갈면서 숫자를 철저히 응징, 새시태워 회광으로 만들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다만 늅늅의 정신머리가 이를 방해하여 이후 두고두고 후회할 우환의 근원을 남겨두었던 것이다.

일이야 어찌되었건 데블님의 능수능란한 시팅으로 숫자는 공병이 다 갈려 더이상 위협적인 상황은 되지 않았고, 첫 전쟁의 뼈아픈 실패를 곱씹으며 나는 다시 회복에 들어갔다. 어느덧 점수는 노블시즌에 이르렀으나 숫자에 대한 견제심리로 인하여 방병은 자꾸 불어만 갔고, 도끼보다는 기마의 생산을 통한 동줍에 열올리게 되었다. 그렇게 노블시즌이 되었다.

방병 규모도 되겠다 공병도 쌓였겠다, 주변의 플레이어들이 다 숫자를 싫어하겠다 그래 한번 해보자 싶어 숫자에게 정찰을 보냈다. 약 500기정도의 정찰병이 숫자의 마을을 긁으러 갔으나, 결과는 안습. 숫자는 정찰을 1000단위로 운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변의 동맹 부족원이 보내준 로그에 의하면 방병도 나보다 더 되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그래 부족이 있었지... 알비에서 그에게 방어지원을 넣어준 것이었다. 이후 나는 숫자에 대한 공략은 포기한 채 무한 동줍과 주변 생광화를 통해 힘을 증강시키고 있었다. 그런 이때, 또 하나의 사건이 일어났다. 20시간 거리에서 도끼가 4개 올라온 것이다. 상대는 비아고아. 다시한번 알비가 나를 갈기위해 공병을 띄웠다.

이전에 비해 침착해졌다고는 하지만, 고점수대의 플레이어에게서 날아온 4자루의 도끼는 공포가 아닐 수 없었다. 마침 행사준비로 바쁘기도 했기에 주변 부족원들에게 최대한 지원을 요청하고 횃불 지원을 받아가며 장벽을 올리고 도끼가 도착하는 순간을 기다렸는데(또 데블님께 휴가대리;;; 데블님 ㅈㅅㅈㅅ;;;)...

결과는 승전!!! 횃불간지가 위력을 발휘한 것이다! 2기의 핵과 2기의 대포동이, 창검 2000셋과 500투석앞에 허무하게 녹아내렸다. 방어 odd는 하늘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고, 사실 아직도 이때 방어 odd로 먹고산다. 엄청난 결과앞에 나는 횃불에 대한 욕심과 엄청난 사기진작을 획득할 수 있었고, 이는 이후 지칠줄 모르는 무한동줍에 큰 도움을 주었다.
(개인적인 판단으로, 이때의 블랙홀질이 이후 알비로부터 공격받지 않게 되는데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이후 계속

by kkkclan | 2009/08/22 22:23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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